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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진악산 - 보석류 (Ginaksan /Gaumsan)

by guide-story 2025.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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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사는 진악산 남동쪽 밑단에 위치한 사원으로 신라헌강왕 11년(885) 조선선사가 창건했다. 절의 전산에서 돈을 캐불상을 만들어 절명을 보석사로 삼았다.

 

의병의 장비는 공주의 청정암과 보석사로 무예를 익힌 후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워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승을 규제하고 청주성을 탈환해 김산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보석사 동남기슭의 입구에 있는 5기의 부도는 모두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탑신에 주인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장전 앞에는 석탑이 있으며, 법정에는 지장3존화(지장보살, 무독괴왕, 도명존자)를 중심으로 사후 세계에서 심판을 내리는 야라 대왕을 포함한 열대왕상이 있다.

 

불의 문

 

대웅전과 조사전

 

보석사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한 석가여래 삼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조사 전에는 휴정·유정·영규의 영정과 임진왜란 때에 산화된 15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지만 영정은 훔쳐 2020년에 새로운 영정으로 대체되었다.

 

영규 대사가 머물며 수도 정진한 곳에 전해지는 의선각은 지금은 요사채로 이용되고 있다.

 

경내에서 봉황문 계단을 내리면 목조 아치형 다리가 개울을 건너다.

 

물든 단풍이 녹색 단풍과 어울리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조선대사가 보석사 창건 무렵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보석사의 은행나무는 이미 잎을 떠나지 않았지만, 장대한 모습은 잃지 않고 있다.

 

나무의 신장이 34m나 되지만, 하나의 생명체가 이렇게 크게 자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화려한 소원은 다음 해 대신 축제를 올릴 때까지 금실에 매달려 나무의 영험을 나타내는 표지가 된다.

 

영천암을 오르는 500m가 넘는 길은 오색 단풍으로 제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대로 가을을 만끽한다.

 

옆에 계곡의 물이 흐르는 단풍의 길을 활기차게 걷는 것은 행복하다. 약간 경사가 있는 길이지만 어렵다는 생각이 한순간도 나오지 않는다.

 

잘게 물든 단풍으로 잡고 좌우를 휘둘러 가끔 위를 올려다 보면 어느새 높은 벽이 전에 있다.

 

산국과 나팔꽃은 또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나가가와 암은 신령의 샘이라는 의미를 가진 곳에서 한여름에도 새하얀 옷입기가 서리는 용천암 약수를 띄워 차를 우려해 마시면 보통 미네랄 워터와 뚜렷한 맛이라고 한다.

 

금산지역에 큰 가뭄이 들어오자 조선대사는 가뭄을 가는 샘을 찾아 진악산을 올랐다. 기슭에서 큰 바위를 찾아 주장자로 바위를 내렸다. 그러자 바위 아래에서 맑은 샘이 쿵쿵쿵솟아 나와 가뭄을 쓰러뜨릴 수 있도록 했다. 대사는 그 영험한 바위를 지키기 위해 바위 앞에 암자를 지어 영원한 샘이 있는 암자라는 의미로 '영천암'으로 했다.

 

조구 대사는 잠시 후 시내를 건너 산기슭에서 돈을 내고 불상을 만들어 보석사를 세웠다.

 

나가가와 바위의 용수는 자물쇠로 채워져 있지만 한입 마실 수는 없었지만 하산도도 즐거운 것은 같다.

 

보석사로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이번 가을의 정취를 보상된다.

 

보석사는 절명대로 금산의 보석인 것 같다. 천년 고찰이기도 하지만 천년의 은행나무가 있어 보다 유구한 역사를 추측할 수 있다.

 

장두 마을의 금강으로 차를 예정해 가는 도중에, 지금까지 차량이 잘 떨어진 자갈밭이 잘 굳어지고 있다.

 

이윽고 캠퍼도 없어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앉는다. 아직 년이 있지만, 오리를 구워 소주 병을 비웁니다.

 

저녁이 되기 때문에 캠퍼 3팀 정도 들어왔지만 좌석이 넓고 큰 불편이 없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자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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